'애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2.24 퀘드코어 스마트폰 2
  2. 2011.10.18 퍼옴 ...........애플
  3. 2010.06.08 Apple 아이폰HD (출시)
드디어 퀘드코어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는가??

전 아직도 피처폰입니다.. 물론 아이패드 정도는 가지고 있지요 ..이놈의 핸드폰 약정이 남아서..
전 구두쇠거든요^^;

아래 기사를 읽으면서 스마트폰의 변화를 생각해볼때, 덜 익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군요~
현재 최고의 스마트폰은 누가 머라고 해도,, 갤럭시 S2 그리고 아이폰4S 라고 생각이 됩니다.

위 두개의 스마트폰으로 세상에 못할것이 없지요! 속도요?!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죠!

퀘드코어... 공정의 변화로 얻을 수 있는것은

1. 속도 성능의 30% ~ 80%
2. 전력누수    30% ~ 80%

엄청난 변화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로... 얼리어덥터가 아닌이상 갤럭시S2로 향후 3년이상은 충분히
가능할것이라 봅니다..
참 흥미 롭네요...  기술의 진화는..^^

그나저나 ... 갤럭시S2 떨이가 되는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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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세계 최대 이동통신 국제전시회 ‘MWC 2012’에 맞춰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신형 스마트폰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현재 많은 수의 사용자들이 ‘쿼드코어 = 성능증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프로세서의 코어가 늘어난 만큼 스마트폰이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작업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능이 증가한 만큼,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성능이 증가하면 전력소모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MWC 2012에서 공개될 스마트폰 대다수는 이전 세대의 기술 및 공정으로 제작된 쿼드코어 프로세서가 탑재되어 있다. 따라서 과연 전력소모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성능을 개선하면서 전력소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것이 바로 ‘프로세서 세대교체’와 ‘공정 개선’이다.

이제 프로세서 세대교체, 공정 개선이 대세다



‘프로세서 세대교체’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에 맞춰 성능을 개선하고 전력소모를 줄인 신형 프로세서를 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모바일 칩셋의 프로세서 세대교체는 사실상 ‘ARM’이 전담하고 있다. ARM은 영국의 반도체 회사로 현재 대다수 모바일 프로세서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듀얼코어 프로세서 대다수는 ARM의 ‘코텍스 A9’을 기반으로 한다. 코텍스 A9이란 일종의 ‘설계도’다. ARM은 이 코텍스 A9의 설계만 담당할 뿐이고, 실제 프로세서 생산은 엔비디아, TI, 퀄컴, 삼성전자 등이 담당하고 있다.

ARM은 코텍스 A9보다 성능은 더 뛰어나면서도 전력은 오히려 적게 소모하는 ‘코텍스 A15’를 공개한 상태다. 엔비디아, TI, 퀄컴, 삼성전자 등 많은 제조사가 코텍스 A15를 기반으로 하는 신형 프로세서를 제작하고 있다.

‘반도체 회로의 폭을 줄여 전력 소모 및 발열을 줄어들게 하는 것’이 바로 ‘공정 개선’이다. 프로세서 세대교체와 달리 공정 개선은 엔비디아, TI, 퀄컴,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의 몫이다.

MWC 2012에서 공개될 쿼드코어 프로세서 대다수는 40 나노 공정 기반이라 전력소모 개선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출시될 듀얼코어 프로세서는 28나노 공정 기반이라, 전력 소모 및 발열을 크게 줄어들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전력소모뿐만 아니라 전력누수도 최소화할 수 있는 32나노 HKMG(하이케이메탈게이트) 공정을 적용해, 타사의 프로세서보다 더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테그라3, 쿼드코어지만…



가장 먼저 쿼드코어의 시대를 알린 제품은 엔비디아의 쿼드코어 프로세서 ‘테그라3’다. 테그라3는 ARM 코텍스 A9, 40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는 듀얼코어 프로세서와 별 다른 차이가 없는 제품이다.

테그라3는 기존의 듀얼코어 프로세서에 비해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증가한 전력소모를 개선하기 위해 별도의 저전력 캠패니언 코어를 하나 더 탑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캠패니언 코어가 얼마나 활용될 수 있을지는 약간 의구심이 든다. 이 코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별도로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테그라3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옵티머스 4X HD’, HTC ‘엔데버’ 등에 탑재될 예정이다. 참고로 핸드폰 리뷰 매체 텔레포니노는 LG전자 옵티머스 4X HD의 실기영상을 유투브에 공개했다(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vXvKWZxG5PY).

TI, 쿼드코어? 풉



미국의 반도체 회사 TI도 베일에 싸여있던 신형 듀얼코어 프로세서 ‘오맵5’를 공개하면서, 프로세서간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타사의 쿼드코어 프로세서와 직접 비교하면서 성능의 우위를 강조한 것이다. TI는 800MHz 속도의 오맵5를 탑재한 스마트폰과 테그라3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실제로 비교한 영상을 유투브에 공개했다. 이 영상을 살펴보면 오맵5는 800MHz의 낮은 클락으로 구동되고 있음에도, 웹 서핑 시 테그라3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맵5는 ARM 코텍스 A15, 28나노 공정 기반이며, 프로세서의 속도는 아직 미정이다. 지금까지의 TI의 행보를 볼 때 속도를 좀 낮추더라도 전력을 적게 소모해, 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예측된다.

IT전문 매체 일렉트로니스타는 이러한 오맵5의 뛰어난 성능은 두 개의 코텍스 M4 프로세서를 추가로 탑재해 배후에서 성능을 보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TI가 공개한 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_kgPlsczhZg)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오맵5는 올해 상반기 내로 출시될 예정이다.

퀄컴, 나도 A15다 그리고 LTE도 내편



미국의 무선통신 칩셋 제조사 퀄컴도 이에 뒤질세라 신형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스냅드래곤 S4(MSM 8960)’라고 명명된 이 프로세서는 ARM 코텍스 A15, 28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 아난드텍은 스냅드래곤 S4의 성능 벤치마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스냅드래곤 S4는 ARM 코텍스 A9 기반 구형 듀얼코어 프로세서에 비해 최소 20%에서 최대 80%까지 성능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바스크립트 처리능력(웹 서핑이 더 빨라진다)을 확인해보니 타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스냅드래곤 제품군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 받던 그래픽 처리능력도 50%이상 개선했다. 다만 개선된 그래픽 처리능력도 갤럭시S2와 별반 다를 바 없었고, 아이폰4S보다는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능만이 스냅드래곤 S4의 강점은 아니다. 퀄컴의 무선통신 칩셋도 프로세서 내부에 같이 탑재되어 있는 것이 스냅드래곤 S4의 진정한 강점이다. 무선통신 칩셋이란 3G, 4G같은 무선통신 신호를 수신하기 위한 칩셋이다. 다른 프로세서는 4G LTE를 지원하기 위해 별도의 통신 칩셋을 탑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추가비용은 사용자들이 구입하는 스마트폰의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마련이다.

현재 스냅드래곤 S4를 탑재 예정인 제품은 HTC의 ‘바일’뿐이나, MWC2012에서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32나노 HKMG만 믿고 가자



지금까지 세 제조사의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아직까지 삼성전자는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신형 프로세서도 점점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IT전문 매체 EE타임즈는 삼성전자가 컨퍼런스를 개최해 신형 쿼드코어 프로세서 ‘엑시노스 4412’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EE타임즈에 따르면 엑시노스 4412는 ARM 코텍스 A9을 기반으로 하지만, 40나노가 아닌 전력 누설을 개선한 32나노 HKMG 공정을 적용해 기존 제품에 비해 전력을 최소 35%, 최대 50%까지 더 적게 소모한다고 한다. EE타임즈는 “삼성전자가 MWC 2012에서 엑시노스 4412를 탑재한 신형 태블릿PC 및 스마트폰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외에도 ARM 코텍스 A15, 32나노 HKMG 공정을 기반으로 하는 신형 듀얼코어 프로세서 ‘엑시노스 5250’의 대략적인 윤곽도 나타났다. 여러 외신을 종합해 볼 때 엑시노스 5250은 2GHz 벽마저 부숴 매우 빠른 속도로 구동되지만, 전력소모는 오히려 기존 제품에 비해 훨씬 적을 것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성능을 40% 이상 끌어올리면서, 전력누수는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이패드3는?




만약 3월에 아이패드3가 출시된다면 쿼드코어 프로세서 엑시노스 4412와 유사한 성능을 지닌 프로세서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프로세서의 제작을 삼성전자에 위탁하고 있는 상황이라, 애플의 프로세서와 삼성전자의 프로세서는 사실상 배다른 형제라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애플의 프로세서 A5X(가칭)는 현재 양산준비가 끝난 엑시노스 4412와 별반 성능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Posted by 옆모습오빠
:

1970년대에 들어서자, 이전까지는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의 전유물이었던 컴퓨터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다만, 컴퓨터를 구매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은 강렬한데 반해, 정작 이들이 쓸만한 컴퓨터는 보기 드물었다. 몇몇 제품들이 나오긴 했지만, 가격이나 성능, 혹은 편의성 면에서 문제가 있어 많이 팔리지 않았다. 당시 최대의 컴퓨터 기업이었던 IBM 조차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던 1974년,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게임 회사인 아타리사에 근무하던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와 대형 컴퓨터 업체인 휴렛패커드(HP)의 직원이었던 ‘스티브 워즈니악(Stephen Gary Wozniak, 1950~)’은 컴퓨터 제작 동호회인 ‘홈브류 컴퓨터 클럽’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의기투합, 자기들이 직접 컴퓨터를 만들어 돈을 벌 계획을 세웠다.


1998년 아이맥 G3의 출시를 즈음해 등장한 애플의 현재 로고

 

당시 컴퓨터의 주로 쓰이던 CPU(중앙처리장치)는 인텔 i8080이었다. 이 CPU는 성능이 우수했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컴퓨터의 기본 설계를 담당한 워즈니악은 인텔 i8080보다 가격대비 성능이 높은 모토로라의 MC6800 CPU를 더 선호했으며, 이들이 만든 컴퓨터에는 MC6800 계열 CPU 중에서도 저렴한 MOS 6502를 탑재하기로 했다. 또한, 전반적인 회로 설계를 간략화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이 컴퓨터의 첫 번째 시험모델은 1976년 3월에 완성되었다. 워즈니악은 이 컴퓨터의 시험모델을 자신이 일하던 HP의 간부들에게 보여주고 이를 제조해 판매할 것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잡스와 워즈니악, 두 천재의 의기투합


이러한 이유로 잡스와 워즈니악은 자신들이 직접 부품을 모아 창고에서 제품을 제조해서 판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판매망을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잡스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바이트샵’이라는 컴퓨터 매장을 운영하던 폴 테렐(Paul Terrell)에게 시험 모델을 보여주었다, 이 새로운 컴퓨터에 흥미를 느낀 테렐은 30일 안에 50대를 납품해 줄 것을 요청한다. 자금이 부족했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자신들이 소유했던 차량과 전자계산기 등을 급히 팔아서 컴퓨터를 생산할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충분한 부품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잡스는 아타리의 기술자인 론 웨인(Ronald Wayne)에게 주식 10%를 준다고 제의해 자금을 투자하고 기술 고문을 담당하게 했다.

 

스티브 잡스(왼쪽)과 스티브 워즈니악(오른쪽), 이 두 천재의 만남으로 애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애플 I은 1976년에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생산 대수가 적어 현재는 구하기가 힘들다. <출처: (CC)Ed Uthman at Wikipedia.org>

 

 

이렇게 잡스와 워즈니악, 그리고 웨인을 포함한 3명은 컴퓨터의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고, 1976년 4월 1일, 회사도 설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애플’, 그리고 컴퓨터의 이름은 ‘애플 I’이라고 붙이기로 했다. 애플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잡스가 일하던 오리건주에 사과 농장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잡스가 좋아하던 음악 그룹 ‘비틀즈’의 음반을 팔던 ‘애플 레코드’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전화번호부의 맨 앞쪽에 ‘A’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며, 사과 열매가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잡스와 워즈니악을 비롯한 애플의 창립자들조차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회사 이름의 유래를 다르게 설명했다고 하니 위의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애플 I은 1976년 6월에 바이트샵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으며, 대당 가격은 666.66달러였다. 하지만 초반 판매는 순조롭지 못했다. 이에 공동 투자가 중 한 명인 웨인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애플 설립 11일만에 애플의 주식 10%를 포기하고 800달러를 받아 회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2개월 정도 지나자 입소문을 타고 애플 I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주문량을 채우기 위해 잡스와 워즈니악이 밤을 세워가며 애플 I을 생산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애플 I은 10개월 동안 200여대가 판매되었으며, 그 결과, 잡스와 워즈니악은 8,000달러 정도의 제법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애플 II,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끌다

창업 당시부터 1998년까지 사용한 애플의 로고


애플 I이 인기를 끌자 잡스는 이를 대량생산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당시 컴퓨터 업계의 자산가 중 한 명이었던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를 설득해 92,000달러를 투자 받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77년 1월 3일, ‘애플 컴퓨터’라는 정식 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잡스는 반도체 회사인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일하던 전문 경영인, 마이클 스코트(Michael Scott)를 영입해 CEO로 취임시킨다.

 

CEO로 취임한 스코트는 회사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 사원 번호를 부여했는데, 당초 사원 번호 1번은 워즈니악, 2번이 잡스, 그리고 3번과 4번은 각각 마쿨라와 스코트의 몫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이에 반발했고, 결국 스코트는 예정에 없던 사원 번호 0번을 만들어 잡스에게 부여했다. 이는 잡스 특유의 강한 고집과 자존심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법인 설립 이후, 워즈니악은 기존의 애플 I을 개량한 새로운 컴퓨터의 개발에 착수했다. 신제품은 CPU의 성능을 높임과 동시에 컬러 모니터 출력 기능을 더했고, 그 외에도 각종 기능 확장 슬롯 및 카세트테이프 방식의 보조기억장치를 달았다. 그리고 제품의 디자인을 중시한 잡스의 제안에 따라 매끈하고 세련된 플라스틱 재질의 흰색 본체를 갖추게 되었다.

 

애플 II는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며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에 한 획을 그었다. <출처: (CC)Marcin Wichary at Wikipedia.org>

 

 

이렇게 탄생한 ‘애플 II’는 1977년 4월부터 1,298달러에 팔리기 시작했다. 애플 I보다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당시 컴퓨터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편에 속했다. 애플 II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는데, 1978년에 7,600대 팔리던 것이 1980년에는 그 10배인 78,100대, 1982년에 이르자 30만대가 팔릴 정도였다(참고로, 애플 II의 생산은 1993년까지 계속되었고 총 판매량은 500만대에 달했다). 덕분에 잡스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애플이 주식 공개를 시작한 1980년 당시, 잡스의 자산은 2억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잃어버린 초심, 혹독한 대가

애플 II의 성공으로 인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커지자 세계 최대의 컴퓨터 업체인 IBM은 1981년, ‘IBM PC(Personal Computer)’를 출시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IBM PC 최대의 특징은 바로 완전한 공개형 아키텍처(Architecture: 시스템 전반의 구조 및 설계방식)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때문에 IBM 외의 제조사에서도 이와 완전히 호환되는 PC 본체 및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설계, 생산할 수 있었다.

 

IBM의 기세에 위기를 느낀 애플은 애플 II의 후속 모델인 ‘애플 III’를 개발, 1980년에 출시했다. 하지만 애플 III는 애플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애플 III는 작은 본체에 최대한 많은 기능을 넣으려 했기 때문에 내부의 부품 구성이 매우 오밀조밀하고 복잡했는데, 제품 개발이 지나치게 급하게 진행된 탓에 오류 수정이나 품질 테스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애플 III는 오류가 자주 발생하고 내부 발열도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III의 개발을 총 지휘한 잡스는 소음을 발생시키는 냉각팬을 탑재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애플 III는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애플 III는 큰 기대를 모았으나 전반적인 제품의 품질이 낮아 인기를 끌지 못했다. <출처: (CC)Thorsten1 at Wikipedia.org>

 

가격도 문제였다. 애플 III를 구매하려면 기본형 제품은 4,000달러 이상, 고급형 제품은 7,800달러 이상을 줘야 했다. 애플 II의 성공 요인 중에 하나가 저렴한 가격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애플 III의 이러한 가격 정책은 애플이 초심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애플 III는 불과 5만대 정도의 낮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그 중에서도 상당수 물량은 잦은 고장으로 인해 리콜을 해야 했다. 1983년에 초기 제품의 문제점을 개선한 ‘애플 III 플러스(Plus)’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이미 땅에 떨어진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애플 리사는 GUI 운영체제를 탑재한 야심작이었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하여 잡스는 제록스(Xerox)사에서 처음 개발된 GUI(Graphical User Interface) 방식의 컴퓨터 운영체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쓰던 TUI(Text User Interface) 방식의 운영체제는 각종 명령어를 직접 타이핑하여 실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GUI 운영체제는 화면 상에 표시된 시각적인 요소를 마우스로 클릭하며 조작하므로 사용이 편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GUI 운영체제의 가능성에 감화된 잡스는 애플이 당시 고급형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하던 ‘리사(Lisa) 프로젝트’에 GUI 운영체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게 된다.

 

그 결과, 1983년에 출시된 ‘애플 리사’는 GUI 운영체제를 탑재하게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 중 GUI 운영체제를 탑재한 것은 애플 리사가 처음이었다. 그 외에도 본체와 모니터가 일체화된 디자인, 확장 가능한 메모리 슬롯, 외장형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애플 리사는 당시의 컴퓨터로서는 획기적인 기능을 다수 갖췄다. 하지만 GUI 운영체제를 원활히 구동하기에 애플 리사의 CPU는 속도가 너무 느렸기에 사용자들의 불만을 샀으며, 제품 가격이 1만 달러에 달했다. 결국 애플 리사는 많이 팔리지 않았다. 애플 III와 리사의 실패로 애플은 큰 손실을 입었으며, 이들 제품의 개발 책임자였던 잡스의 입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킨토시는 IBM을 이길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 애플 내에서 제프 라스킨(Jef Raskin)에 의해 또 하나의 GUI 운영체제 컴퓨터의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었다. 라스킨이 좋아하던 사과의 품종인 ‘Mcintosh’에서 이름을 가져은 ‘매킨토시(Macintosh) 프로젝트’ 였다. 이는 비디오 게임기처럼 다루기 쉽고 저렴하면서 출판물 제작과 같은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며, 본체를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초, 매킨토시 프로젝트 팀은 라스킨이 단독으로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 도중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난 잡스가 돌연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가담, 두 사람이 공동 책임자가 되어 이끄는 형태가 되었다. 잡스는 애플 리사에서 실현하지 못한 여러 가지 요소를 매킨토시에 집어넣으려 했고, 당연히 라스킨과 대립이 잦아졌다. 특히 디자인 적인 면에 크게 신경을 쓴 나머지 본체 안에 들어가는 기판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개발할 것을 지시할 정도였다. 잡스의 이러한 행동에 자존심이 상한 라스킨은 개발 도중 애플을 퇴사했다.

매킨토시는 교육 및 출판 등의 분야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며 애플에 새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개발된 매킨토시는 1984년 1월, 2,495달러에 출시되었다. 당시 컴퓨터 시장은 IBM PC 및 IBM 호환 PC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매킨토시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하지만 애플은 IBM을 소설 ‘1984’의 ‘빅브라더’에 비유하는 TV 광고를 방영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전용 레이저 프린터 및 출판 편집용 소프트웨어를 출시해 출판 및 교육 분야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IBM PC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킨토시가 애플 II 이후에 방황을 계속하던 애플에게 있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확실했다.

 

 

잡스, 애플에서 쫓겨나다


애플 II 이후 뚜렷한 히트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잡스는 경영자로써 좀 더 뛰어난 인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가 영입 1순위로 생각했던 인물은 바로 팹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였다. 그는 한때 코카콜라에게 크게 밀리던 펩시콜라를 업계 1위까지 올려놓을 정도로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컬리를 영입하기 위해 잡스는 18개월 넘게 끈질긴 구애를 보냈고, ‘설탕물을 팔며 인생을 보내기 보단 우리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자’는 잡스의 언변에 감탄한 스컬리는 결국 1983년, 애플의 CEO직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한 배를 타게 된 잡스와 스컬리는 초반에는 매우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정통파 경영인인 스컬리는 고집과 개성이 강하고 돌출 행동을 종종 일으키는 잡스를 점차 못마땅하게 보게 되었고 둘은 사사건건 충돌하게 된다.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1984년 크리스마스 시즌, 매킨토시의 수요를 과대평가한 잡스의 잘못된 예측 때문에 애플이 막대한 재고를 떠안게 된 일이다. 이로 인해 애플은 큰 손실을 보았고 전 종업원의 20%를 정리해고 할 수밖에 없었다.

 

스컬리는 이러한 실패의 책임을 물어 잡스의 해임을 이사회에 건의 했고, 이사회는 투표를 거쳐 잡스의 해임을 결정했다. 사실 잡스는 매킨토시의 수요예측 실패 외에도 애플 III 및 애플 리사의 연이은 실패로 인해 입지가 크게 좁아진 상태였다. 애플에서 물러난 잡스는 ‘넥스트(NeXT)’사를 세워 독자적인 워크스테이션 컴퓨터 및 워크스테이션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며 재기를 노리게 된다.

 

 

정통파 경영인이 이끄는 애플은 과연?

잡스를 몰아내고 애플의 실권을 쥐게 된 스컬리는 정통파 경영인답게 제품의 다양화를 추진하게 된다. 우선 한 종류 밖에 없던 매킨토시의 라인업을 세분화 하여 1987년에 고화질 컬러 그래픽을 지원하는 ‘매킨토시 II’ 및 보급형 제품인 ‘매킨토시 SE’를 동시에 출시했고 1990년대 초 중반부터는 최상위 기종인 ‘매킨토시 쿼드라’, 중상급형인 ‘매킨토시 센트리스’, 보급형인 ‘매킨토시 클래식’, 저가형인 ‘매킨토시 LC’ 등으로 라인업을 넓혔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 외에 다른 주력 상품이 필요하다고 느낀 스컬리는 ‘지식 내비게이터(Knowledge Navigator)’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87년에 나온 세계 최초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용 정보 단말기)인 ‘뉴턴(newton)’이다. 뉴턴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필기 기능을 내장했으며, 주소록 및 수첩, 계산, 스캐줄 관리 등 다양한 능력을 갖췄다. 뉴턴은 오늘날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이었으나, 가격이 1,000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쌌고, 이런 휴대용 단말기가 널리 쓰일 만큼 시장이 성숙되지 않아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뉴턴의 실패로 인해 스컬리의 입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93년, 스컬리는 애플의 CEO 자리를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게 넘기고 물러나게 된다.


1987년에 나온 ‘뉴턴’은 세계 최초의 PDA였으나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탓에 성공하지 못했다. <출처: (CC)Rama at Wikipedia.org>

 

 

파워 PC 탑재, 매킨토시 호환 기종 출시의 투 트랙 전략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시장의 상황은 점점 애플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특히 1980년대 중반을 즈음하여 IBM PC 및 IBM 호환 PC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고, 애플의 매킨토시 시리즈는 일부 출판 및 교육 분야를 제외하면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애플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것은 매킨토시를 고성능화해 전문가 시장을 공략함과 동시에 애플이 아닌 다른 제조사에게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여 매킨토시의 전반적인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애플과 IBM, 그리고 모토로라가 협력하여 개발한 고성능 CPU인 ‘파워 PC(Power PC)’였다. 파워 PC는 당시 IBM 호환 PC에 탑재된 인텔의 펜티엄(Pentium) CPU 보다 한 수 위의 성능을 발휘했다. 파워 PC를 탑재한 ‘파워 매킨토시(통칭 파워맥)’는 1994년에 처음 출시되었고, 고성능을 요구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매킨토시가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적합하다는 이미지는 이 때부터 심어졌다.

 

그리고 1994년, 애플은 자사 외의 업체에서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을 출시할 수 있게 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부터 파워컴퓨팅, 파이오니아, 모토로라, 유맥스 등의 업체에서 매킨토시 호환 기종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이들 호환 기종들은 애플의 매킨토시와 같이 ‘맥 OS’ 운영체제를 탑재했으며 가격은 애플 매킨토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매킨토시 호환 기종은 높은 가격대비 성능을 무기로 조금씩 시장을 넓혀나갔다.

 

 

적자투성이 애플, 누가 인수할 것인가?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오던 애플이었지만 1995년에 IBM 호환 PC용 운영체제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출시되어 인기를 끌자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다. 윈도우 95의 출시로 인해 IBM 호환 PC는 매킨토시 못지 않은 GUI 운영체제 환경을 갖추게 되었고, 자연히 매킨토시를 쓰던 소비자들이 하나 둘 IBM 호환 PC로 떠나갔다. 더욱이 매킨토시 자체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인데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들은 점차 늘어났다. 이런 매킨토시 호환기종들은 싼 가격을 무기로 애플의 오리지널 매킨토시 판매량을 낮추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애플의 경영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1995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애플은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고, 후임으로 길 아멜리오(Gilbert Frank Amelio)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하여 애플이 매각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애플과 실제로 매각 협상을 벌이거나 혹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알려진 기업은 썬 아미크로시스템, AT&T, IBM, 캐논, 필립스 등 다양했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을 후한 조건으로 인수하려 할 회사가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모든 협상은 결렬된다.

 

 

잡스의 복귀와 애플의 회생

 

1998년에 출시된 아이맥 G3는 큰 인기를 끌면서 애플 회생의 발판이 된다


위기에 빠진 애플의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1985년에 애플을 떠난 잡스였다. 윈도우 95의 출시를 즈음한 시기, 애플은 이미 성능 및 기능 적으로 한계에 달한 맥 OS를 대신할만한 새로운 운영체제가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당시 잡스가 운영하던 넥스트 사에서 개발한 ‘넥스트스텝(NeXTSTEP)’ 운영체제가 주목 받았다. 운영체제뿐 아니라 넥스트스텝의 기술 및 잡스의 경영 능력이 필요했던 애플의 이사회는 1996년, 넥스트사를 인수하고 잡스를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 시킬 것을 결정했다.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매킨토시의 호환 기종 출시를 중단시킴과 동시에, 매킨토시의 라인업을 정리해 간략화 했다. 그리고 초대 매킨토시의 모티브를 이어받아 디자인이 우수하고 사용이 간편한 새로운 매토시의 개발에 착수한다. 그 결과, 1998년에 ‘아이맥(iMac) G3’가 발표된다. 아이맥 G3는 초대 매킨토시와 같이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화했으며, 반투명과 화려한 원색이 어우러져 전반적인 디자인이 매우 미려했다. 그리고 IBM 호환 PC에 사용하는 USB 포트를 적용하는 등, 사용 편의성도 높았다.

 

아이맥 G3는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외에도 아이맥 G3의 디자인 컨셉을 이어받은 노트북인 ‘아이북(iBook, 현재의 맥북)’, 미려한 디자인과 고성능을 동시에 추구한 ‘파워북(PowerBook) G3’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덕분에 애플은 1998년부터 다시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2001년, 기존의 맥 OS를 대신하는 새로운 매킨토시용 운영체제인 맥 OS(Mac OS) X가 등장했다. 맥 OS X의 내부 구조는 넥스트사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에 기반하고 있어 기존의 맥 OS와 큰 차이가 있었으며, 성능 및 기능은 물론, 디자인 면에서 많은 진화를 이룩했다. 맥 OS X의 등장으로 매킨토시는 윈도우 기반 PC와는 확연히 다른 고유의 매력을 갖추게 된다.

 

 

아이팟,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되다

아이맥 G3와 맥 OS X의 출시로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사업은 혼란을 벗어나 안정기에 접어든다. 이후, 잡스는 당시 한창 성장세에 있던 MP3 플레이어(휴대용 디지털 음악 재생기) 시장에 뛰어들 계획을 세운다. 2001년에 출시된 애플의 ‘아이팟(iPod)’은 플래시메모리에 음악 파일을 저장하던 대부분의 기존 MP3 플레이어와 달리 하드디스크를 사용, 훨씬 많은 음악 파일을 저장할 수 있었고 미려한 디자인과 직관적인 조작법까지 갖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아이팟이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었다. 개인이 직접 CD에서 추출하거나 불법 다운로드로 음악 파일을 얻어야 했던 기존 MP3 플레이어와 달리 아이팟은 ‘아이튠즈 스토어(iTunes Store)’라는 전용 음악 판매 서비스와 결합,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질이나 양 면에서 다른 MP3 플레이어를 압도했으며, 덕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아이팟은 2001년에 첫 출시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다양한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아이팟은 이후, 오리지널 아이팟의 소형 버전인 아이팟 미니(iPod mini, 현재의 아아팟 나노), 잘 쓰지 않는 기능을 제거하고 가격을 낮추고 휴대성을 극대화한 아이팟 셔플(iPod shuffle)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아이팟은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군계일학, 아이폰 출시

2007년에 첫 출시된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과 확연히 구별되는 기능과 활용성을 발휘했다


아이팟의 성공은 이후 애플의 주력 사업을 컴퓨터에서 휴대용 IT 기기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된다. 애플은 1987년 출시된 뉴턴의 실패 이후 휴대용 정보 단말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와 시장 상황은 크게 변화해 휴대전화는 물론, PDA, MP3 플레이어, 그리고 인터넷 단말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을 한데 모은 스마트폰(Smart Phone)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애플이 2007년에 처음 출시한 ‘아이폰(iPhone)’은 매킨토시와 뉴턴, 그리고 아이팟에서 얻은 애플의 노하우가 모두 집결된 스마트폰 중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아이폰 출시 이전에도 RIM사의 블랙베리(BlackBerry)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모바일’ 등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이 다수 나와있었으나 이들은 가격이나 기능, 성능 면에서 다양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에 무리였다. 특히 조작법이 어려운 편이라 초보자들이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으며, 각 스마트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수가 적어 특정 목적의 전문가를 제외하면 활용성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아이폰은 아이팟 시리즈 및 맥 OS X에서 이어받은 심플한 인터페이스, 그리고 두 개 이상의 손가락 입력을 동시에 인식하는 정전식 멀티터치 스크린 등을 갖춰 초보자들도 쉽게 적응이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팟 시리즈 용으로 활용되면서 이미 방대한 콘텐츠를 확보한 아이튠즈 스토어를 그대로 아이폰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 콘텐츠 면에서도 다른 스마트폰을 압도했다.

 

아이폰 시리즈는 이후 3세대 통신 기능을 갖춘 ‘아이폰 3G(2008년)’, 이보다 처리 속도 및 배터리 수명을 보강하고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한 ‘아이폰 3GS(2009년)’가 연달아 출시되면서 인기를 이어갔으며, 2010년에는 이보다 전반적인 성능 및 휴대성, 그리고 디스플레이 화질을 높인 ‘아이폰 4’가 출시되었다. 다만, 아이폰 4가 출시될 무렵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Andriod) 운영체제에 기반한 타사의 스마트폰이 대거 출시되어 아이폰 못잖은 인기를 끌었고, 아이폰 4가 제품의 특정 부분을 손으로 잡으면 통화 품질이 저하되는 이른바 ‘안테나 게이트’ 결함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 악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4는 변함 없이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2011년에는 아이폰 4의 개량형인 ‘아이폰 4S’가 출시되며 안드로이드 진영과의 정면 승부를 이어나갔다.

 

 

태블릿 컴퓨터 아이패드, 화면만 커진 아이폰이 아니야?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휘어잡은 애플은 2010년, 아이폰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은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iPad)’를 출시하며 새롭게 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전의 태블릿 컴퓨터는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기반 노트북에 터치 스크린을 탑재한 형태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기능이나 성능, 휴대성 면에서 기존의 노트북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때문에 아이패드 역시 단순히 ‘화면만 커진 아이폰’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아이폰 특유의 뛰어난 조작성과 미려한 디자인 및 방대한 콘텐츠까지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가벼운 무게와 긴 배터리 수명까지 실현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이패드의 출시로 인해 이전까지는 거의 존재감이 미미했던 태블릿 컴퓨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으며, 몇몇 전문가들은 태블릿 컴퓨터로 인해 기존의 PC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후 애플은 기세를 몰아 기존 아이패드보다 전반적인 성능을 강화하고 휴대성을 높인 아이패드 2(iPad 2)를 2011년에 출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2010년)

 

 

잡스가 없는 애플의 미래는?

애플은 2011년 현재, 3분기 실적 기준으로 매출액이 285억 달러, 순이익은 73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립 당시, 좁은 창고에서 애플 I을 조립하며 소박하게 시작했고, 한때는 매각 위기까지 몰렸던 기업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났다. 애플은 그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어떤 기업이건, 규모가 작은 창립 초기에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한 핵심 경영진의 개인적인 능력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능력보다는 기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기업 특유의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아무리 경영자의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진 기업의 전반적인 운영을 직접 이끄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한 기업들의 대부분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애플은 예외다. 가내 수공업 규모였던 창업 초기는 물론,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시점까지도 창업주인 잡스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으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가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혁신을 주도했으며, 지금도 세계 IT 시장을 주름잡는 큰 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2011년 10월 5일, 잡스는 세상을 떠났다. 잡스가 없는 애플이 그의 유산을 얼마나 충실하게 계승하여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애플 주요 연표 

애플 연표
연도 주요
1 1974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홈브류 컴퓨터 클럽’에서 처음 만남
2 1976년 개인용 컴퓨터 ‘애플 I’ 완성, 200여대를 판매함
3 1977년 ‘애플 컴퓨터’ 법인 설립, ‘애플 II’ 출시
4 1980년 애플, 주식 공개, ‘애플 III’ 출시
5 1983년 최초의 GUI 운영체제 개인용 컴퓨터 ‘애플 리사’ 출시
6 1984년 ‘매킨토시’ 출시
7 1985년 스티브 잡스,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됨
8 1987년 세계 최초의 PDA ‘뉴턴’ 출시
9 1992년 애플, 모토로라, IBM 합작으로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 플랫폼 개발 계획 발표
10 1994년 신형 CPU ‘파워 PC’ 및 이를 탑재한 ‘파워 매킨토시’ 출시
11 1995년 파워컴퓨팅, 파이오니아 등에서 매킨토시 호환 기종이 출시됨
12 1997년 NeXT사 인수, 스티브 잡스 경영 복귀
13 1998년 ‘아이맥 G3’ 출시, 기업 실적이 흑자로 전환
14 2000년 새로운 운영체제 ‘맥 OS X’ 발표
15 2001년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 ‘아이팟’ 출시
16 2003년 온라인 음악 상점 ‘아이튠즈 스토어’ 오픈
17 2005년 애플, 매킨토시에 인텔 CPU를 탑재한다고 발표
18 2007년 스마트폰 ‘아이폰’ 출시
19 2010년 태블릿 컴퓨터 ‘아이패드’ 출시
20 2011년 스티브 잡스 사망

 

 

 -네이버 퍼옴----------


Posted by 옆모습오빠
:

난 핸드폰 한번 사면 뽕을 뽑는 편이다..

요즘 들어 아이폰 아이폰 해대니 관심을 갖게될수 밖에

얼마나 대단한 놈이길래.. 스펙이나 기능을 한번 살펴 봤는데..

헐...;;; 장난이 아니네.. 이게 핸드폰인지 컴퓨터 인지..

정말 대단한 물건인듯.. 7월되면 아이폰HD란 놈이 나온다고 한다.

기사를 대충 훌터 보니... 참 갖고 싶네..

핸드폰 바꿀때가 되면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네..



기특하게 생겼네..


역쉬 화이트가 간지가 난다..ㅋㅋ


간단하게 기사 뜬거 끄적여 보자!!


------------------------------기사 원문---------------------------------------


아이폰의 차세대 모델인 '아이폰4'가 베일을 벗었다.

아이폰4는 오는 24일부터 미국 등 5개국에서 우선 판매되고, 한국에서는 7월에 출시된다. 국내 업계에서는 7월18일께 출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요건 KT와의 협상(?)

애플이 7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 월드와이드 개발자 콘퍼런스(WWDC)에서 아이폰4를 발표했다.

아이폰4의 가장 큰 특징은 3.5인치 레티나(망막) 디스플레이에 인치당 326픽셀인 960×640의 해상도를 지원해 기존 아이폰 3GS보다 4배의 선명한 화질을 구현,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했다.

이는 인간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300픽셀보다 높은 것이다.  <------확실히 해상도가 높으면 보이는게 장난이아님

앞면에도 카메라를 갖춰 영상 통화인 '페이스 타임' 기능을 제공한다. 영상통화는 현재 아이폰4 간에 가능하고, 와이파이로만 작동한다.   <-----와이파이..요거 정말 쓸만한 놈이다..나도 노트북에서 사용하지만 꽁짜는 좋은거여!~

카메라 화질도 500만 화소로 업그레이드 되는 등 HD급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고, 5배의 줌인 및 아웃 기능을 갖췄다. LED 플래시를 장착해 어두운 곳에서도 사진 촬영을 원활히 할 수 있다.  <--핸펀카메라는 솔직히 있으나 마나..;

중앙처리장치(CPU)는 아이패드에 채용된 A4 프로세서를 탑재했으며, 512MB의 메모리와 16GB 및 32GB 이상의 용량을 갖췄다. 크기는 가로 58.6mm, 세로 115.2mm이며, 두께는 9.3㎜로 스마트폰 가운데 가장 얇아졌다. 무게는 기존 140g보다 가벼원진 137g이다.  <----CPU는 듀얼로 후딱 바뀌길..

여기에 자이로스코프 기능을 채용해 회전감과 입체감을 활용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자이로스코프는 3개 축으로 회전하는 물체의 역학적 움직임을 감지하는 기능이다.

아이폰4는 지난 4월 공개된 아이폰 운영체제(OS) 4.0을 기반으로 해 기존 아이폰에서 불가능했던 멀티태스킹 기능 등 신형 OS의 장점을 그대로 담았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탑재된 기존 운영체제의 이름인 아이폰 OS 4.0을 iOS 4.0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아이폰4에는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 모아 놓을 수 있는 통합 폴더와 여러 계정의 이메일을 하나의 편지함으로 모을 수 있는 통합 이메일 기능도 들어왔다.

새 모바일 광고 플랫폼인 아이애드(iAd) 역시 애플 제품 처음으로 내달 1일부터 탑재돼,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등의 콘텐츠와 광고를 연계시켰다.

아이패드에서 처음 도입된 전자책 서비스인 아이북스를 아이폰4에도 채용했고, 아이북스에서 다운받은 전자책은 아이폰4뿐 아니라 아이패드 등 iOS를 적용한 애플 디바이스에서 무료로 호환된다.

기존 아이폰3G 및 3GS, 아이팟 사용자는 내달 21일부터 iOS 4.O로 무료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아이폰4S는 또 A4 칩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배터리 크기를 늘려 성능이 음성통화 기준으로 기존 아이폰 3GS에 비해 40%(5시간→7시간)가 향상됐다. 3G 브라우징은 10시간, 와이파이 브라우징은 10시간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검색엔진인 '빙'을 기존 구글 및 야후와 함께 기본 검색엔진으로 탑재했으며, 3G 라디오도 장책다.

아이폰4는 오는 15일부터 예약을 받아 24일부터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판매된다.

아이폰4는 7월에는 한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벨기에, 캐나다 등 40여개 국가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아이폰 3GS를 판매했던 KT를 통해 출시된다.

애플은 이 외에도 올해 내로 40여개 국가에서 더 출시해 총 88개 국가에서 아이폰4를 내놓을 계획이다.

가격(미국 기준)은 16GB 모델이 199달러, 32GB 모델이 299달러로, 미국에서는 AT&T를 통해 2년 약정으로 출시된다.

이날 아이폰4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한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한번 써보면 (기존 기종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며 해상도를 강조하면서 "iOS 기반의 디바이스(아이패드.아이폰4)가 올해 1천만대 이상 팔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애플은 단순히 기술 회사가 아니고 그 이상의 회사"라며 "기술을 휴머니티, 인문학(liberal arts)과 결합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비교분석!!


Posted by 옆모습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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